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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만 안토니오(5.29)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명 홍익만 안토니오(洪翼萬 Anthony)
축일 5월 29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02년
같은이름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홍 안토니오, 홍안토니오

   홍익만(洪翼萬)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양근에서 살다가 1790년을 전후하여 한양의 송현으로 이주해 살았다. 1801년의 순교자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서사촌(庶四寸) 동생이요, 홍필주 필립보와 이현 안토니오의 장인이다.

   홍 안토니오는 1785년에 천주교 교리에 대해 듣고는 김범우 토마스를 찾아가 교회 서적을 빌려 읽었으며,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는 교회 지도층 신자들과 교류하면서 교리를 연구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다만,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를 폐지할 생각을 가졌으나, 주변 환경 탓에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1796년 홍 안토니오는 사위인 홍 필립보의 집에서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배운 뒤, 자주 신부를 방문하여 성사를 받았다. 또 가까운 신자들과 공동체를 만들고 교회 활동을 도왔으며, 때때로 주 야고보 신부를 자신의 집에 영접하였다. 당시 그의 집은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하부 조직이요 집회소였던 ‘6회’의 하나로 선정되어 있었다.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홍 안토니오는 안산과 여주로 피신해 다녔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문초 과정에서 홍 안토니오는 교우들을 밀고하고 천주교를 배교하도록 강요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체포된 교우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생활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이때 그가 재판관들 앞에서 대답한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었다.

   “저는 제가 지은 죄가 용서받기 어려운 것임을 스스로 알면서도, 몇 달 동안 도망을 다니다가 비로소 체포되었습니다. ……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있으니, 마음을 바꾸어 신앙을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죽음밖에는 따로 진술할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신앙을 증언한 홍익만 안토니오는 마침내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런 다음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 새남터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2년 1월 29일(음력 1801년 12월 26일)이었다.

   홍익만 안토니오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해 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참고자료
유은희 지음, 이슬은 길이 되어(한국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 이야기 두번째) - ‘사위들과 함께 신앙의 개가를 하느님의 종 홍익만 안토니오, 이현 안토니오, 홍필주 필립보’, 서울(도서출판 순교의 맥), 2012년, 217-222쪽.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 '홍익만 안토니오', 서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144-145쪽.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자료집 제4집 - '홍익만', 서울, 2007년, 120-142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홍익만 洪翼萬',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749-9750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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