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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광주대교구 >  노안 성당
[소개] [찾아가는길]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1908년 계량 본당으로 설립된 나주 지역 최초의 성당
지번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750 
도로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이슬촌길 108
전화번호 (061)336-8900
팩스번호 (061)336-8902
홈페이지
문화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4호

광주대교구 노안성당 - 나주순교자기념성당 순례길
작성자   주호식  쪽지 번  호   
작성일   2017-08-07 오전 11:40:58 조회수   71 추천수   2

[신앙의 땅] 광주대교구 노안성당 - 나주순교자기념성당 순례길

후손들의 축제의 장이 된 선조들의 신앙


- 노안성당.


신앙 선조들 덕분에 오늘날 지역 주민들이 축제의 장을 만들고 신앙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우며 생활하고 있는 마을에 전남 나주 노안성당이 있다. 이곳을 출발하여 나주성당에 이르는 12.9km의 도보성지순례를 2명의 교우들과 함께 떠났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주님께 힘을 얻는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례의 길을 떠나니 마음 든든했다.

이른 아침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계량마을 입구에서 내려 노안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이슬촌으로 향했다. 일교차가 심해 아침마다 풀잎에 이슬이 잘 맺힌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란다. 구한말인 1894년부터 대동계가 조직되어 100여 년도 넘게 이어올 정도로 마을의 상부상조 전통이 깊다.

이슬촌에 천주교 신앙이 시작된 것은 1894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서울에서 피신 온 정락(요한)이라는 사람이 인근 함평 나산에서 약방을 운영하며 양천리 주민이었던 이민숙(바오로), 이진서(토마스), 이화서(바오로)를 전도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약봉지에 ‘천주경’과 ‘성모경’을 써주며 약을 복용할 때마다 외우도록 했고, 그 약을 복용하여 병을 고친 이들이 천주교에 귀의하여 1900년 무안 몽탄성당에서 요양 중이던 이내수(아우구스티노)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곳에 나주지역 최초의 성당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 입구(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각상(우).


10여 년 전 주임신부와 천주교 신자가 대부분인인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슬촌 산타마을 해피 크리스마스’ 축제를 만들었다. 이곳이 ‘이슬촌’보다는 ‘산타 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유이다. 축제의 백미는 성탄전야 미사 때 본당 신자 외에도 관광객들까지 어우러져 미사를 봉헌하면서 서로 정을 나누며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노안성당은 어려운 시절 지역 주민들과 영육 간 나눔을 통해 운명공동체를 이루었기에 오늘날 기쁨을 함께하는 축제의 현장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입구 담장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을 환영하는 문구들이 금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가정상 앞에서 가정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나니 순례의 길을 안내하는 간판이 우리를 반겼다. 성당에 들어서자 특이한 모습을 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성모님을 바라보며 이곳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노안성당 건물은 나주 지역 및 광주대교구 복음화의 모태라는 역사적 의의와 함께 시대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 양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바 있다. 노안성당 건물에 대한 한국전쟁 중 일화를 소개한다.

성당에 불을 지르려던 빨치산들이 와보니 성당이 이미 불타고 있어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성당 건물 전체가 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 착각을 일으키어 화를 면하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당시 제5대 교구장이었던 현 하롤드 헨리(성 골롬반 외방전교회) 대주교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에 기고했다고 한다.


무안의 이내수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기위해 신도가 걷던 길

성당 뒤편에 이르니 아침식사를 거르고 이른 아침 출발한 우리 일행에게 선조들도 맛보았을 보리수(일명 포리똥)며 자두 산딸기 등의 열매가 주렁주렁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을 탐한 후 만족해하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계량재로 향했다. 계량재는 함평(나산)과 나주(노안)를 오가는 지름길로, 장을 가기위해 고개를 넘어야 했던 곳으로 100여 년도 전에 이 길은 천주교가 전파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훗날 고개 너머 방골 사람들이 성 골롬바노 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넘어야 했던 고개였다. 노안성당 앞에 위치했던 성골롬바노중학교는 현재 광주대교구 청소년수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1961년 개교하여 1984년 폐교될 때까지 중등교육의 산실이었다.

- 이별재.


약간 경사진 언덕을 넘다 보니 벌써 힘들어하는 일행도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 호사스럽게 살기에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이내 이별재에 가까왔다. 이별재는 함평장과 나산장을 이어주는 고개로 옛날 가마타고 신행(新行)하던 신부가 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신랑과 이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앙 선조들은 이곳 이별재 광장을 지나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옥산을 지나 산을 오르내리며 무재와 울음재, 오두재와 경현동을 거쳐 영산강과 나주평야 그리고 금성산을 껴안고 나주성당으로 향했을 것이다. 사제들과 신자들이 나산에서 노안성당과 목포 산정동성당을 왕래하면서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무안의 이내수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기를 희망하는 신도들이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이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광주대교구에서 유일한 순교터 나주 무학당

- 순교자기념경당 외부(좌), 순교자기념경당 내부(우).


마침내 1866년에서 1871년에 걸친 병인박해의 현장이며 광주대교구 관할지역에서 유일한 순교터인 나주 무학당에 도착했다. 이곳은 1871년 강영원(바오로), 유치성(안드레아), 유문보(바오로) 세 명의 순교자가 나주로 잡혀와 온갖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가 1872년 무학당(진영의 군사훈련장, 현 나주초등학교 안의 안쪽화단) 앞에서 석침과 백지사형으로 순교했던 곳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순례를 마치고 무학당 순교자들의 믿음으로 터를 닦은 나주성당을 향했다. 일제 말기에 초대 나주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현 하롤드 신부는 선교와 복지, 그리고 1953년 5월31일 목포 산정동본당에 레지오 마리애를 창단하는 등 지역과 천주교회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이런 대주교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관에는 미국의 유족들로부터 영구임대 받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유문보 바오로(상), 까리따스수녀회 전경(하).


2004년에는 기해박해(1839) 때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베드로)와 병인박해(1872) 때 나주 무학당에서 순교한 세 순교자의 신앙을 기리기 위해 나주성당 내에 빈 무덤 형태의 순교자 기념 경당이 건립되었다. 경당의 내외부를 통해 순교자들이 당했던 석침형과 백지사형을, 순교자들이 겪었던 사면초가의 극한상황과 천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순교자들의 비움과 버림과 죽음을, 순교자들의 충만함과 사랑과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교자 기념 경당 옆에 1956년 현 대주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했던 까리따스 수녀회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초창기 수녀들의 생활상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1959년 본원이 광주광역시로 옮겨졌고 초기 수도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4년 나주본당 설립 70주년 기념사업으로 복원되었다.

순례를 마치며 신앙선조들의 희생과 노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과연 선조가 되었을 때 후손들이 기억할 나는 어떤 선조일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8월호, 김경남 알베르토(광주 S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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