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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  절두산
[소개] [찾아가는길] [순교자] [순교자기념탑] [순례길]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한강변에 우뚝 선 신앙의 파수꾼
지번주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96-1 
도로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전화번호 (02)3142-4434
팩스번호 (02)335-0213
홈페이지 http://www.jeoldusan.or.kr
문화정보 사적 제399호(양화나루, 잠두봉 유적)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순교 성지
작성자   주호식  쪽지 번  호   
작성일   2017-09-08 오후 6:52:23 조회수   28 추천수   2

[신앙의 땅]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순교 성지


- 순교자 기념탑.


한강 변에 우뚝 솟은 서울대교구 절두산 순교 성지(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는 연간 30만 명이 넘는 순례 객이 찾아오는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친숙한 성지이다.

절두산은 원래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이라 하여 가을두(加乙頭), 누에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 부르던 곳으로, 바로 아래 양화진 나루터에는 한강을 통해서 각 지방에서 조세곡 수송선과 어물, 채소 등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고, 양화진 주변은 잠두봉과 어울려 이름난 명승으로 꼽혔다.

1866년 2월 프랑스 군함이 천주교탄압을 문제 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였다. 이에 격분한 대원군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베어 참수케 한다. 그 뒤로 머리를 잘랐다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생명을 바쳐 믿음을 증거한 한국 천주교회 신앙선조들의 순교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뜻깊은 성지이다.

- 합정역쪽에서 성지 올라가는 길.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 프란치스코로 1866년 10월22일 부인,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 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약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특히 선참후계(先斬後啓)라 하여 심문과정 없이 바로 처형했기 때문에 많은 순교자가 났으며, 이 때문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잘린 목은 그대로 한강에 던져져 머리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곳 절두산 순교 기념관과 성당은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해 1966년 착공되어 1967년 10월 완공되었다. 현재 절두산성지 내에는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와 유물.유품을 전시한 박물과, 28위의 성인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을 비롯하여 야외 전시관이 있다.


십자가의 길(야외 14처)

2001년 11월1일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으며, 십자가의 길에는 교회에서 통용되는 기도문의 첫 부분을 새겨 넣어 이곳에서 순교한 신앙의 선조들이 바쳤던 ‘셩노션공’의 머리 부분도 함께 제시되었다.

성모동굴

1958년 성모님이 프랑스 루르드(마사버넬)에서 발현하신 것을 기념하여 1978년 만들어졌다.

순교자 기념상

절두산에서 처형된 첫 순교자 가족 이의송(프란치스코)과 그의 처 김예쁜(마리아) 아들 봉익을 형상화 한 듯한 이 순교자 상은 참수되어 떨어진 목을 몸통위에 받쳐놓은 모습으로 처절한 순교 광경을 연상시키고 있다.

형구틀

병인박해 때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앞구멍에 머리를 대고 목에 밧줄을 건 뒤 뒷구멍에서 잡아당겨 질식시키는 교수형 집행기구가 있고, 그 밖의 많은 형구들이 성당 앞 형구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오성바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다블뤼 주교, 오매트리오 신부, 위맹 민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의 사연이 깃든 바위로 다섯 분의 성인을 기리는 뜻으로 오성바위라 이름 붙였다.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될 때와 충남 보령 갈매못 형장으로 끌려갈 때 쉬어 간 바위로, 이 다섯 성인들이 여기서 쉬는 동안 포졸들이 포승을 풀어 주어서 안 주교는 교우들을 만나 격려하고 함께 기도한 후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고 한다. 그 앞의 돌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한 다블뤼 안주교가 21년간 숨어 살던 방을 드나들 때마다 밟고 다니던 문지방돌이다.

순교자 기념탑

절두산에서 순교한 것으로 확인되는 이의송 가족을 비롯한 28위의 순교자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고, 형틀을 상징하는 조형물 아래 16명의 순교자 모습이 새겨져 있고 주탑과 함께 33명의 순교자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성당 지하로 내려가면 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의 유해가 모셔져있는 성인유해실이 있다. 십자가의 길 아래로 내려가면 박순집묘 연양비와 척화비, 남종삼 요한 성인의 흉상이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절두산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순교자의 혼을 담은 곳으로, 순례 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순교성지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9월호, 최성은 도나다(서서울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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