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홈 서울대교구 | 가톨릭정보 | 뉴스 | 메일 | 갤러리 | 자료실 | 게시판 | 클럽 | UCC | MY | 로그인
|  성경  |  매일미사  |  성무일도  |  기도서  |  성가  |  성인  |  성지  |  가톨릭사전  |  교리서  |  교회법  |  공의회  |  소리도서  |  7성사  |  주소록  |
   성경 
구약성경
신약성경
성경본문 검색
성경소제목 검색
성경-성서 비교
4복음서 대조
성서해설(공동번역)
성경자료실
성경묻고답하기
성경쓰기
성경쓰기느낌나누기
My 성경 책갈피 책갈피
   매일미사 
오늘의 미사
전례력으로 찾기
미사통상문
우리들의 묵상|체험
전례/미사자료실
소리매일미사
성무일도
   가톨릭 기도서 
주요기도문
특수기도
여러가지기도
   가톨릭성가 
성가검색
악보감상실
전례음악자료실
   가톨릭성인 
오늘의 성인
성인목록
성인앨범
성인자료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성지/사적지소개
성지/사적지목록
성지/사적지앨범
성지/사적지게시판
성지/사적지자료실
   가톨릭 사전 
통합 검색
가톨릭대사전
전례사전
천주교 용어사전
천주교 용어자료집
   가톨릭 교리서 
교리서 요약편
   교회법 
   바티칸공의회 문헌 
   소리도서 
성지명
지역명
내용

인천교구 >  반주골(이승훈 베드로 묘)
[소개] [찾아가는길] [순교자]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묘 주인은 천진암으로
지번주소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1(남동구 정수사업소 뒷산) 
전화번호 (032)464-0888
팩스번호 (032)461-0888
홈페이지
전자메일 mansu1@caincheon.or.kr
관련기관 만수1동 성당    
관련주소 인천시 남동구 하촌로 66
문화정보 인천시 기념물 제63호

천주교회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순교자묘역 반주골
작성자   주호식  쪽지 번  호   
작성일   2017-04-03 오후 7:16:52 조회수   63 추천수   2

천주교회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순교자묘역 반주골


한국 천주교회의 선각자이며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 베드로는 1756년 평창 이씨 가문의 부친 이동욱과 모친 여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벼슬길을 단념하고 당대의 명문가인 마재 정씨 가문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결혼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당대의 석학 이벽(李檗)과도 교분을 갖게 된 그는 정약용 형제들과 천진암 강학회에 참석하던 중 이벽의 권유로 1783년 말 동지사 서장관에 임명된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가게 된다. 그는 북경에 머무르는 동안 북당(北堂)에서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교리를 배워, 이듬해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그는 교리서적, 십자고상, 상본을 가지고 귀국하여 이벽, 정약전 · 약용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주고, 1785년에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갖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킴으로써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

비록 몇 차례의 배교를 했지만, 조선에 복음의 첫 씨앗을 뿌린 선구자였던 이승훈은 1801년 3월 22일 신유박해 때 이기환, 정약용, 홍낙민 등과 함께 체포되어 4월 8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되었다. 그의 신앙은 후손들에게 이어져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증손 이연구와 균구는 1871년에 각각 순교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반주골은 이승훈 베드로의 선영(先塋)이 있는 산으로, 그와 그의 아들 신규, 택규의 묘가 있다. 1973년 인천시 도시계획으로 반주골에 있는 선영은 시흥군 낙화산골로 이장되었고, 이승훈과 그의 아들들의 묘소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1981년 11월 28일, 이승훈 묘가 개봉되어 그의 유해가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으로 옮겨졌다.

1980년 이승훈의 후손을 찾아 나선 故 오기선 신부가 반주골 조곡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이승훈의 6대손 이병규씨로부터 이승훈 베드로가 참수 전에 마음에 뜻을 담아 남긴 한시 ‘달은 비록 지더라도 하늘에 그저 있고, 물은 비록 치솟아도 그 못 속에 온전하다.’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달은 비록 서산에 지더라도 하늘에 남아있음과 같이 남이 비록 나더러 배교했다 말하더라도 내 신앙은 천주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물이 비록 못 위로 치솟아도 그 못 속에 온전함 같이 내 목숨을 빼앗아가도 내 신앙은 변함이 없다.”

인간적 나약함으로 인해 여러 차례 천주를 부인했던 이승훈은 세상을 떠나는 자리에서 스스로에 대한 애절한 후회와 자책을 시구 속에 절절하게 담았다. 그리고 그는 몇 줄의 한시를 통해 결코 자신의 신앙은 변함이 없음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약점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극복했던 성인의 행적을 묵상하는 순례를 통해 신앙생활의 굳건함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미사 안내 : 교구 성지개발후원회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 오후 3시에 만수 1동 성당에서 미사 봉헌 후 이승훈 묘역 도보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교구민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구 성지개발후원회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032-765-6916 성지개발후원회)

* 참조 : 한국천주교주교회의(www.cbck.or.kr),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www.paxkorea.kr)

[2017년 4월 2일 사순 제5주일 인천주보 5면]

이모티콘  
한줄답변      

수정 삭제 답변 추천하기 인쇄 목록

* 이 글과 관련된 글(이전글, 현재글, 다음글)
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추천
46002
[반주골(이승훈 베드로 묘)]
천주교회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순교자묘역 ... 주호식 2017/04/03 63 2
45497
[반주골(이승훈 베드로 묘)]
이승훈 묘역에 천주교 역사문화체험관 들어선... 주호식 2016/05/15 20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