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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인천교구 >  갑곶
[소개] [찾아가는길] [증거자]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순교자의 피로 물들었던 강화 앞바다가 한눈에
지번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1000 
도로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
전화번호 (032)933-1525
팩스번호 (032)933-1526
홈페이지 http://www.gabgot.com
전자메일 gabgot@caincheon.or.kr
관련기관 인천교구 50주년 기념 영성센터    
문화정보 사적 제306호(강화 갑곶돈)

성지순례길 - 수도권 지역: 갑곶 순교 성지
작성자   주호식  쪽지 번  호   
작성일   2017-03-20 오전 11:29:02 조회수   176 추천수   1

[성지순례길 - 수도권 지역] 갑곶 순교 성지(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35)


- 갑곶 순교 성지 입구.


따사로운 햇살 아래 부는 바닷바람이 아직은 찹니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에 갑곶 돈대가 있고, 그 바로 위에 갑곶 성지가 자리 잡고 있네요. 성지에 올라서자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이 흐르는군요. 배를 타고 한강을 따라 마포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지요.

아니나 다를까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인 로즈가 자국의 선교사들을 살해하였다는 명목으로 이곳을 침략하였습니다. 그때 리델 신부와 천주교인 최선일 · 최인서 · 심순녀가 바닷길을 안내하여 박해의 단초가 되었지요. 또한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아시아함대 사령관인 로저스가 통상을 빌미로 이곳에 침입하였습니다. 그때도 천주교인들이 연관되어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워 서양 오랑캐와 그에 부합하는 자들을 척결하라고 명령하였지요. 그래서 미군함에 왕래하였던 천주교인 박상손 · 우윤집 · 최순복이 갑곶진두에서 참수되었던 겁니다.

갑곶 성지 가장 높은 곳에 순교자 삼위비가 서 있습니다. 시신이나 봉분도 없고, 생애나 후손도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그 옆의 묘소 하나가 눈길을 끄는군요. 2001년 순교자 삼위비가 건립될 때, 절두산 성지에서 이장된 신앙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묘입니다. 그의 부친 박바오로는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시신을 빼내 노고산에 매장하였다가 삼성산으로 이장한 인물이었습니다. 병오박해 때에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왜고개에 안장하기도 하였고요. 그는 아들 박순집에게 순교자들의 매장지를 알려주고 1868년에 양화진에서 순교하였지요.

- 박순집 베드로 묘.


부친처럼 훈련도감의 군인이었던 박순집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신부들과 신자들의 시신을 새남터에서 빼내 왜고개로 이장하였답니다. 남종삼 등 서소문 밖에서 치명한 이들의 시신도 몰래 안장하였고요. 박순집의 일가 16명이 병인박해 때 치명하였지만, 그는 박해를 피하여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장하는 한편 순교자들의 행적과 매장지를 교회 법정에서 증언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증언록 3권에는 153명의 순교자 행적이 기록되어 현재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이후 그는 제물포로 이주하여 인천교구 발전에 힘을 쏟다 1911년에 선종하였답니다.

성지 입구에 ‘개국의 성역 강화’라 새긴 바위가 눈에 띕니다. 강화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 마니산 참성단, 그리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이 있는 명실상부한 개국의 성역이지요. 그런 곳에 순교와 증거의 성역이 마련되었으니 더욱 뜻깊네요.

갑곶 성지의 세 순교자나 박순집 증거자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진 소임이 있을 겁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라는 성지의 현판을 떠올리며 소임을 되새겨봅니다.

[2017년 3월 19일 사순 제3주일 서울주보 5면, 김문태 힐라리오(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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