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홈 서울대교구 | 가톨릭정보 | 뉴스 | 메일 | 갤러리 | 자료실 | 게시판 | 클럽 | UCC | MY | 로그인
|  성경  |  매일미사  |  성무일도  |  기도서  |  성가  |  성인  |  성지  |  가톨릭사전  |  교리서  |  교회법  |  공의회  |  소리도서  |  7성사  |  주소록  |
   성경 
구약성경
신약성경
성경본문 검색
성경소제목 검색
성경-성서 비교
4복음서 대조
성서해설(공동번역)
성경자료실
성경묻고답하기
성경쓰기
성경쓰기느낌나누기
My 성경 책갈피 책갈피
   매일미사 
오늘의 미사
전례력으로 찾기
미사통상문
우리들의 묵상|체험
전례/미사자료실
소리매일미사
성무일도
   가톨릭 기도서 
주요기도문
특수기도
여러가지기도
   가톨릭성가 
성가검색
악보감상실
전례음악자료실
   가톨릭성인 
오늘의 성인
성인목록
성인앨범
성인자료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성지/사적지소개
성지/사적지목록
성지/사적지앨범
성지/사적지게시판
성지/사적지자료실
   가톨릭 사전 
통합 검색
가톨릭대사전
전례사전
천주교 용어사전
천주교 용어자료집
   가톨릭 교리서 
교리서 요약편
   교회법 
   바티칸공의회 문헌 
   소리도서 
성지명
지역명
내용

대구대교구 >  신나무골
[소개] [찾아가는길] [로베르신부]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를 품은 영남지방 선교의 요람지
지번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산57-9 
전화번호 (054)972-2014
팩스번호 (054)972-8875
홈페이지
관련기관 신동 성당    
관련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367

대구경북의 성지: 영남 신앙의 교두보, 대구 첫 본당 터 신나무골
작성자   주호식  쪽지 번  호   
작성일   2017-03-20 오전 11:39:33 조회수   60 추천수   2

[대구경북의 성지, 지상순례] 영남 신앙의 교두보, 대구 첫 본당 터 신나무골

“죽어서도 성교(聖敎)를 믿겠소”


대구에서 서북방향 20km, 4번 국도를 타고 신동을 지나 왜관으로 가다보면 ‘신나무골 성지’라는 큰 표지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에서 충청도 배론과 함께 가장 유서가 깊은 박해 시대 교우촌으로, 신자들이 나무 아래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신나무골’. 영남지방 선교의 요람지인 신나무골은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외지고 깊숙한 산골이면서도 대구를 지척에 두어 많은 선교사들이 대구 진출의 전초 기지로 삼았던 신나무골은 샤스탕, 다블뤼, 최양업, 리델 신부 등이 사목 활동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1866년 병인박해로 신나무골의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박해가 잦아들면서 다시 모여들었고 새로 입교한 이들과 함께 신자촌을 이루었습니다.

1885년 12월에는 경상도 선교 담당으로 로베르(김보록) 신부가 부임하여 이곳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지어 정착하였는데 바로 주교좌 계산성당의 시작이자 대구의 첫 본당 설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년 후 로베르 신부가 대구 새방골로 옮겨 가고 그 뒤를 이어 보두네 신부와 조조 신부가 얼마간 머물며 사목하다가 각각 전주와 부산에 본당을 설립해 나갔습니다. 1895년에는 빠이아스 신부가 거처를 신나무골에서 가실로 옮겨 본당을 설립했는데 그때부터 신나무골은 가실본당의 공소가 됐으며 1928년 왜관본당이 설립되자 왜관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68년 2월 신동본당이 설립돼 관할 교우촌이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연화서당’이라고 불리는 신나무골 학당이 있었는데 서울 약현성당(명동성당)의 ‘한한학교’와 함께 천주교 내에서 가장 일찍 신학문을 가르친 신식학교였습니다. 1883년에 세워진 이 학당은 1920년 신동초등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인근 마을 아이들에게 신학문과 구학문, 천주교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1860년 경신박해 때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가 묻혀 있습니다. 칠곡읍에 살던 이선이 가정은 박해를 피해 신나무골에 피난했지만 이곳에도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다시 한티로 피신하였습니다. 결국 포졸들에게 붙잡힌 이선이와 장남 배 스테파노는 “죽어도 성교를 믿겠다.”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작두날에 목이 잘려 순교했습니다. 칠곡 안양동(현재 대구 북구 읍내동 산 21번)에 모셔져 있던 이선이의 유해는 1984년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맞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주선으로 이곳 신나무골로 이장 안장되었습니다.

대구대교구는 1977년 제1차 신나무골 성역화사업을 완수하고 이곳에 ‘대구 천주교 요람지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984년에는 대구 본당의 첫 본당터를 복원하고 마당에 로베르 신부 흉상도 건립했습니다. 지난해 2016년 9월 10일 칠곡군에서는 가실성당에서 이곳 신나무골을 거쳐 한티 성지에 이르는 45.6km의 ‘한티 가는 길’이 개통되어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19일 사순 제3주일 대구주보 4면]

이모티콘  
한줄답변      

수정 삭제 답변 추천하기 인쇄 목록

* 이 글과 관련된 글(이전글, 현재글, 다음글)
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추천
45989
[신나무골]
대구경북의 성지: 영남 신앙의 교두보, 대... 주호식 2017/03/20 60 2
41717
[신나무골]
성지에 가다: 신나무골 성지 - 이선이 엘... 주호식 2014/05/19 17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