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홈 서울대교구 | 가톨릭정보 | 뉴스 | 메일 | 갤러리 | 자료실 | 게시판 | 클럽 | UCC | MY | 로그인

  월 
전날 오늘 다음날
신심 새로운 여인 성 마리아
1일 (금)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Friday of the ...
2일 ()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Saturday of th...
3일 () 연중 제22주일
Twenty-second ...
4일 (월)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Monday of the ...
5일 (화)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Tuesday of the...
6일 (수)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Wednesday of t...
7일 (목)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Thursday of th...
8일 (금)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Feast of the N...
9일 ()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Memorial of Sa...
10일 () 연중 제23주일
Twenty-third S...
11일 (월)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Monday of the ...
12일 (화)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Tuesday of the...
13일 (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Memorial of Sa...
14일 (목) 성 십자가 현양 축일
Feast of the E...
15일 (금)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Memorial of Ou...
16일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
Memorial of Sa...
17일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연중 제24주일
Twenty-fourth ...
18일 (월)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Monday of the ...
19일 (화)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Tuesday of the...
20일 (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Memorial of Sa...
21일 (목)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
Feast of Saint...
22일 (금)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Friday of the ...
23일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
Memorial of Sa...
24일 () 연중 제25주일
Twenty-fifth S...
25일 (월)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Monday of the ...
26일 (화)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Tuesday of the...
27일 (수)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
Memorial of Sa...
28일 (목)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Thursday of th...
29일 (금)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Feast of Saint...
30일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
Memorial of Sa...
2017년 9월 20일 수요일
[(녹)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28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예물준비 성가 510 주님께 올리는 기도
215 영원하신 성부
영성체 성가 156 한 말씀만 하소서
163 생명의 성체여
170 자애로운 예수
파견 성가 283 순교자 찬가
<9월 17일 주일로 경축 이동을 한 곳에서는 평일 미사를 드린다.>
입당송
시편 88(87),3 참조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하다며,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영광 속으로 올라가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3,14-16
사랑하는 그대여, 14 나는 그대에게 곧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이 글을 씁니다. 15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16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당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시어,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분께서는 영광 속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3-4.5-6(◎ 2ㄱ)
◎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 주님을 찬송하리라. 올곧은 이들의 모임, 그 집회에서, 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 그분 업적은 엄위롭고 존귀하네. 그분 의로움은 영원히 이어지네.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
○ 당신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시고,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시네. 위대하신 그 일들 당신 백성에게 알리시고, 민족들의 소유를 그들에게 주셨네. ◎
복음 환호송
요한 6,63.6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 신비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3(22),1-2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저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진리란 누구에게나 타당한 삶의 지혜를 뜻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보편적이고 타당해도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한 복음의 진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나 이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태도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는 말씀은 세상과 무관하게 자기 편견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단식하고 고행할 때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먹고 마시자,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고 빈정대는 태도는, 어떤 일이든 비난과 반대를 위하여 자기주장을 절대화하는 독선과 아집의 끝판을 보는 듯싶습니다.
진리에 눈을 감고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리를 외면하다 보면 자기 합리화와 위선의 늪에 빠지고, 그런 거짓을 집단적인 이익과 관심을 위하여 진리로 위장하면 결국 거짓을 진실로 믿게 되는 망상에 빠집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가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결국 옳다는 것은, 삶으로 신앙을 증언한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서 밝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매일의 삶 안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실천하여,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임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