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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48 주 우리에게 사랑과 자유를
예물준비 성가 212 너그러이 받으소서
220 생활한 제물
영성체 성가 164 떡과 술의 형상에
176 믿음 소망 사랑
497 우리를 위하여
파견 성가 44 평화를 주옵소서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의 신자들에게 그들의 교회를 위한 기도를 전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의 마음 안에 사시고, 그들이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간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겉으로만 유지되는 평화와 평온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14-21
형제 여러분, 14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3(32),1-2.4-5.11-12.18-19(◎ 5ㄴ 참조)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복음 환호송
필리 3,8-9 참조
◎ 알렐루야.
○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
◎ 알렐루야.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걸림돌’처럼 보이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그분의 위로와 치유에 목마른 우리에게 오히려 이 세상에 불을 지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분열과 갈등, 주위 사람들과의 반목에 지쳐 주님께서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을 화해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는 우리에게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며 자문해 봅니다. ‘과연 내 안에서 타올라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혹시 평화와 평온이라는 명목으로 스스로의 삶을 무덤처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은 이기심과 무사안일을 태우고 정화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타오르게 합니다. 나의 삶을 무덤으로 만들고 있는 피상적 관계와 내적 공허함은 ‘갈등’이라는 위기와 마주치면서 비로소 변화의 계기를 만납니다. 그러기에 불과 분열을 주시겠다는 것은 죽어 있는 가슴속의 갈망을 다시 샘솟게 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참생명을 체험하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 주십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인 독일의 칼 라너 신부가 올린 기도의 한 대목을 음미하며 사랑의 하느님과의 만남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를 깊이 성찰해 봅니다.
“내 하느님, 오직 사랑 안에서만 당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내 영혼의 문이 활짝 열려/ 내게 자유의 새 공기를 마시게 해 주시며/ 하찮은 자아를 잊어버리게 해 주십니다./ 사랑 안에서 내 전 존재는/ 궁핍과 공허의 포로로 만드는 나의 편협과/ 자아 긍정의 완고한 한계를 벗어나 여울져 흐릅니다. (중략) 당신이 사랑을 통해서 내 생명의 핵심이 되어 주실 때/ 오, 신비로운 하느님,/ 나는 당신께만 내 자신을 소진할 수 있으며/ 내가 품은 모든 의문도 불살라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침묵 속의 만남』의 ‘내 생명의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