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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일 화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24 내 맘의 천주여
예물준비 성가 332 봉헌
511 미약하온 우리 제물
영성체 성가 155 우리 주 예수
165 주의 잔치
180 주님의 작은 그릇
파견 성가 6 찬미노래 부르며
입당송
시편 106(105),47
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본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통해서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현세적인 데에 매인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을 어리석음이라고 여기며 받아들이지 않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소란 피우는 마귀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으셨다. 그러자 마귀 들린 이에게서 마귀가 나갔고, 이를 목격한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랐다(복음).
제1독서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2,10ㄴ-16
형제 여러분,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8-9.10-11.12-13ㄱㄴ.13ㄷㄹ-14(◎ 17ㄱ)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
복음 환호송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주님의 제대에 예물을 올리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저희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금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더러운 영이 무엇인지 성찰해 봅니다. 우리는 각자의 상처와 욕망에서 자라난 병든 영들에 사로잡혀 있을뿐더러 시대 전체를 휘감으며 수많은 사람의 영적 생명을 앗아 가는 악한 기운에도 짓눌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개인의 내적 회심으로 이끄는 기도와 성찰만이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뿌리 깊은 시대의 병든 부분을 식별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 또한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오로 사도가 오늘 독서에서 호소하는, 현세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선물을 제대로 알아보는 영적 삶을 위한 터 잡기입니다. 특히 사회 병리적 현상과 왜곡된 시각들에서 한 개인이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라 근대적 삶의 기나긴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리는 때때로 예술가들의 예언자적 직관에서 발견하는데, 그 좋은 보기가 19세기 미국의 작가 멜빌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입니다. 이 소설은 ‘근대적 삶의 허무함을 보여 주는 슬프면서도 참으로 순수한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작가는 뉴욕 월가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경사로 일하는 주인공의 ‘하고 싶지 않다’라는 ‘부정’의 대답으로 ‘근대적 삶’의 요구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부정’의 원인과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조금은 수수께끼 같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큰 여운을 남깁니다. “바틀비는 워싱턴에서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해고되었다. (중략) 사면 편지를 받았어야 할 사람은 절망에 빠져 죽었고, 희망적인 편지를 받았어야 할 사람은 희망을 품지 못하고 죽었으며, 희소식이 담긴 편지를 받았어야 할 사람은 구제받지 못한 불행에 짓눌려 죽었다. 생명의 임무를 받아 나섰건만 편지들은 죽음으로 질주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더러운 영’은, 눈에 보이는 업적에 도취되고 풍요의 그늘에서 ‘배달되지 않는 편지’에 희망을 상실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서려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주시는 살아 있는 영을 찾을 때 비로소 ‘더러운 영’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