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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전동 성당
[소개] [찾아가는길] [순교자] [제사문제]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에 우뚝 선 아름다운 성당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200-1 
도로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화번호 (063)284-3222
팩스번호 (063)282-6232
홈페이지 http://www.jeondong.or.kr
전자메일 ooo@hanmail.net
문화정보 사적 제288호(성당),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사제관)
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풍남문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이를 기념해 마당 한편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년)와 권상연 야고보(權尙然, 1751-1791년)가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이곳에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柳恒儉, 1756-1801년)와 유관검(柳觀儉, 1768-1801년)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프란치스코(尹持憲, 1764-1801년), 김유산 토마스(金有山, 1760-1801년), 이우집(李宇集, 1761-1801년)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전주 중앙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주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전동 성당은 초대 주임은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1859-1915년) 신부가 1908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외형공사를 마친 성당이다. 일제가 신작로를 내기 위해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자 그 흙과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고 벽돌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들이 직접 구워 낸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동 성당은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 · 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풍남문을 배경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기념 동상도 볼 수 있다. 한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는 다른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2011년 12월 사제관 뒤편에 2개 동으로 새로 건립되어 축복식을 가진 한국 최초 순교자 기념관이 보인다. 왼쪽 건물은 성심 유치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동 성당은 2006년부터 성당 보수사업을 시행했고 이어서 전동 성당 사적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적공원화 사업의 첫 단계로 2011년 12월 11일 사제관 뒤편 새로 매입한 부지에 한국 최초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2개 동으로 건립된 기념관 내에는 전시실과 성심 유치원, 회합실, 소성당 등이 들어섰다. 전동 성당은 계속하여 현 사제관을 이전한 후 보수하여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또한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성심여중 이전 사업이 완료되는 대로 건물 철거에 착수해 주변 전체를 사적공원화하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이렇게 사적공원화 사업이 다 이루어지면 전동 성당은 인근의 풍남문(보물 제308호)과 경기전(사적 제339호)을 비롯해 한옥마을, 오목대와 한벽루, 치명자산 성지까지 연계되는 성지순례와 역사문화 체험의 중심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5년 11월 6일)]

성당 입구 정원 전경. 담 너머로 경기전이 자리하고 있다.
 
 
전동 성당 : 순교 1번지에 우뚝 선 신앙의 요람
 
건축은 '인간을 담을 그릇을 빚는 작업'에 흔히 비유되고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그 생김새가 서로 달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물 공간이 서로 거슬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에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전주교구 전동 성당이다.
 
착공에서 봉헌까지 23년이 걸린 전동 성당은 비잔틴 풍의 돔을 올린 로마네스크 양식을 하고 있다. 1981년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다.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1가에 있는 전동 성당은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 녹음이 우거진 정원으로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적 제288호로 지정돼 있는 전동 성당은 또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또 주위에 경기전(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셔 놓은 곳, 사적 제339호)과 풍남문을 끼고 있어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과 외래 건축 양식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전동 성당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영화인들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으며, 음악 공연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강재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장으로 사용됐고, 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던 영화 ‘약속’의 마지막 장면 중 주인공 박신양과 전도연이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던 곳도 바로 전동 성당이었다.

전동 성당은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들인 윤지충(바오로, 1759-1791), 권상연(야고보, 1751-1791)이 순교한 자리에 세워졌다. 이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워 참수형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전동 성당에 들어서면 오른편 정원에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라고 새겨진 선돌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08년 전동 성당 공사를 시작한 초대 주임인 보두네 신부 흉상.전동성당 터는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4-1801)과 김유산(토마스, 1761-1801)이 순교한 곳이자 유항검의 동생 유관검과 이우집, 윤지충의 아우 윤지헌이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 주교에게 서양의 큰 배를 조선에 몰고 와달라고 요청한 ‘대박청래’ 사건을 일으킨 죄로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전동 본당 초대 주임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보두네 신부는 20세기 초 전동 성당을 지을 때에 일제 통감부가 전주에 신작로를 닦으며 풍남문 성벽을 헐자 이 성벽 돌과 흙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풍남문 성벽 돌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다. 유항검을 비롯한 전동 성당 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의 목을 효수했던 성벽의 돌을 성당 주춧돌로 사용함으로써 이곳이 순교지일 뿐 아니라 ‘신앙의 요람’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전동 성당은 서울 명동 대성당 내부 공사를 마무리했던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1908년에 착공됐다. 초대 주임 보두네 신부는 17년 동안 매입한 5000평의 대지에 교우들이 낸 성당 신축기금과 자신이 절약해 모은 돈, 그리고 안원오(프란치스코) 회장과 김찬일(아우구스티노) 회장이 기부한 돈을 모두 합쳐 5만원이라는 거액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중국인 벽돌공 100여명이 동원돼 전주성을 헐은 흙을 사용해 벽돌을 직접 굽고, 석재는 전북 익산의 황등산에서 캔 화강석을 말 네 필이 끄는 마차로 운반해 왔고, 목재는 오늘의 치명자산을 매입해 벌목하여 사용했다.

공사 기간 동안 전주 시내에 사는 신자들은 물론 진안, 장수, 장성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밥을 지어먹을 솥과 양식을 짊어지고 와 손마디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고 어깨에 혹이 생기도록 자원 부역을 했다. 신자들의 희생적 노력 끝에 공사를 시작한 지 만 7년 만인 1914년에 전동 성당 외형공사를 모두 마쳤다.

명동 대성당과 같이 공중 회랑과 많은 창을 통해 자연 채광을 살린 성당 내부.초대 주임 보두네 신부는 성당 완공을 못보고 1915년 5월 이질에 걸려 57세로 선종했다. 그래서 성당 내부 공사는 제2대 본당 주임인 라크루 신부에게 맡겨졌다. 라크루 신부는 193평에 달하는 성당 내부공사를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진행하여 마침내 1931년 6월18일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성전봉헌식을 거행했다. 이처럼 전동 성당은 착공에서 성전봉헌까지 23년이라는 대역사 끝에 완성된 성당이다.

전동 성당은 정면 중앙 종탑부와 양쪽 계단에 비잔틴 풍의 뾰족 돔을 올린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특히 12개의 창이 있는 종탑부와 8각형 창을 낸 좌우 계단의 돔은 전동 성당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물로 꼽히고 있다. 또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성당 내외벽은 적색과 회색의 벽돌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색채의 조화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내부 공간도 서울 명동 대성당과 똑같이 공중 회랑과 많은 창으로 만들어 육중한 벽체에 비해 자연 채광으로 상대적으로 내부 공간이 밝도록 꾸며놓았다.

교회 건축물 전문가인 김정신 교수(단국대 건축공학과)는 “전동성당은 전체적으로 종탑부 돔이나 석조 기둥 등 비잔틴 요소를 혼합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외관의 세부 기법,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내부 공간 등 여타 유명 성당을 능가하는 건물”이라고 평했다.
 
전쟁 화재 수난 딛고 시민 휴식처로 자리 
오래된 건축물은 그 세월만큼 다양한 흔적을 갖고 있다. 때론 그 흔적이 ‘전설’이 되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국 천주교회 순교 1번지에 우뚝 서 100여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주 전동 성당도 세월의 흔적만큼 모습을 달리해 왔고, 성당을 찾았던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탄식과 슬픔을 간직해 오고 있다.
 
프랑스인 마리아 앙리에트가 봉헌한 전동 성당 종은 1915년 8월 24일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갖고 종탑에 설치됐다. 경향잡지(제9권)는 당시 종 축복식 광경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예수성심상 뒤로 보이는 중앙 종탑과 좌우의 돔은 전동 성당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물이다.“주교께서는 80여명 교우에게 견진성사를 주시고 이어 성체강복을 하신 후에 종을 달아 삼종을 치니 소리 기묘하고 웅장하야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지라 여러 교우들이 흔히하고 용약하야 일제히 삼종을 외우고 이제부터는 이곳에 귀막힘과 같이 지내던 외교인들도 성교회 소리에 많이 감화하야 천주의 영광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도 또한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종이 사라질 위기도 있었다. 1942년 일제가 전동성당 종을 공출하려 하자, 당시 보좌였던 오기선 신부가 “만일 적이 공습했을 때 전기나 통신이 끊어지게 되면 성당 종을 쳐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고, 또 매일 울리던 종이 울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안해 할 것”이라고 말해 위기를 모면했다. 나바위와 수류 성당을 비롯해 전주 시내 개신교회의 종은 모두 공출당했으나 오 신부의 임기응변으로 전동 성당 종만 공출을 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매주일 오전 10시 30분 교중미사 때만 전동 성당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1937년 4월 13일 전주 교구가 설립되면서 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된 전동 성당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트럭 정비소로 사용하기 위해 제대와 성당 내부를 파괴해 첫 수난을 겪었다. 이후 전동 성당은 1988년 10월에 일단의 괴한에 의해 방화사건이 발생, 성당 동편 2층 회랑이 전소되는 두 번째 수난을 당했다.
 
이 방화사건은 지금도 미궁에 빠져 있지만 전동 성당은 당시 전북지역 민주화의 성지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던 곳이어서 지금도 시민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짓이라고 믿고 있다.
 
전동 성당은 한국전쟁 이후 1955년 공산군에 의해 파괴된 십자가의 길 14처 복구공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해왔다. 1973년에는 성당 마룻바닥을 철거하고 인조석으로 개조를 했으며, 1975년에는 유리창을 개수하기도 했다.
 
1988년 화재사건 이후 제22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한 김봉희 신부는 1992년부터 대대적 전동 성당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성당 바닥은 대리석으로, 부식된 벽돌은 새 벽돌로 교체됐다. 성당 양측 벽면 18개의 창문은 유리화로 단장했고, 화재로 전소됐던 2층 회랑을 복원했다. 또 성당 담을 허물고 그 자리를 꽃길로 조성해 시민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성당 마당의 성모자상.전동 성당 양측 벽면 18개 창 가운데 신자석을 감싸고 있는 12개의 색유리창은 전주교구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창에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중 전주 숲정이와 서천교에서 순교한 한원서 베드로, 손선지 베드로, 이명서 베드로,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조화서 베드로, 조윤호 요셉, 정원지 베드로 7명의 성인과 본당 주보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1801년 순교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유관검, 그리고 동정부부 순교자인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본당 초대주임 보두네 신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 제대 주위에는 예수의 탄생과 수난, 부활, 승천, 성령강림, 성모승천을 보여주는 색유리가 설치돼 있다.
 
성심여자중고등학교와 접한 성당 왼편 담장 쪽에는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인 윤지충 · 권상연의 순교 동상이 서 있었다. 1993년 3월에 건립된 이 순교자상은 윤지충이 십자가를 들고 서 있고, 권상연이 목에 칼을 차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방주 모양의 좌대 위에 설치돼 있다. 마르코 조각실에서 제작한 이 순교자상은 현재 성당 오른편 담장 안쪽, 풍남문이 바라보이는 사거리쪽으로 이전 설치되었다.
 
성당 정문에서 오른쪽 꽃담에는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라고 새겨진 선돌이 있다. 이 순교비에 새겨진 글은 전주교구 가톨릭 미술가회 지도신부인 현유복 신부가 썼다. 그리고 그 옆으로 초대주임인 보두네 신부 흉상과 이전 설치된 순교자상이 있다.
 
성당 마당 왼쪽에는 1977년에 봉헌된 루르드 성모 동굴 성모상이 있으며, 성당 뒷편에는 미리내 천주성삼 성직수도회에서 제작한 ‘피에타상’이 안치되어 있다. 또 1992년에 지하 103m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로 만든 급수대는 신자들로부터 ‘치명생수’라고 불리면서 사랑받고 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된 사제관. 추후 유물 전시관으로 변모할 예정이다.전동 성당 사적공원화 사업  전동 성당과 사제관(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을 중심으로 한 성당 부지 1만 1544㎡가 사적공원으로 거듭난다. 2006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성당 보수사업의 후속 사업으로 이뤄지고 있는 전동 성당 사적공원화 사업은 문화재인 성당과 사제관을 제외한 부대시설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형태로 추진된다.
 
주요 문화재인 성당의 훼손 방지 및 보존을 위해 시작된 보수사업은 성당 벽돌의 부식 원인이 되는 주변 시설 정비 및 도로와 경계를 이루는 성당 담장 정비에 역점을 두었다. 이와 함께 성당 유리창 색유리화를 전면 보수하는 작업도 병행해 현재 색유리화 보수 작업은 완료된 상태다. 이병호 주교가 제안한 성경말씀 등을 토대로 마르크 수사(떼제 공동체)와 김겸순 수녀(노틀담 수녀회)가 작업했다.
 
전동 성당 사적공원 조성 사업의 핵심은 사제관을 보수하고 주변 부대시설을 공원화에 맞춰 대폭 정비하는 일이다. 전동성당 축성식 때 함께 완공된 사제관은 성당을 짓는 데 사용한 것과 같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인데 갈수록 부식이 심화되고 있었다. 사제관 옆 교육관 및 유치원으로 사용되는 건물을 비롯한 부대시설들이 채광 및 통풍(通風)을 막고 있어서 생긴 현상이었다. 전동 성당은 기존의 교육관과 유치원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매입한 사제관 뒤편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한국 최초 순교자 기념관을 2개 동으로 건립하여 2011년 12월 11일 축복식을 가졌다. 사제관과 같은 양식으로 건립된 기념관 내에는 전시실과 부설 성심유치원, 회합실, 소성당 등이 들어섰다.
 
전동 성당 외부.계속해서 전동 성당은 지방문화재인 현 사제관을 이전하고, 이를 보수 단장해 국가문화재로 승격한 후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대신 새 사제관이 성당 뒤편에 신축되고 있다. 또한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성심여자중학교 이전 사업이 완료되는 대로 현 학교 건물을 철거해 전동 성당 주변 전체를 사적공원화하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이렇듯 사적공원화 사업이 모두 완료되면 전동 성당은 인근 풍남문(보물 제308호)과 성당 맞은편의 경기전(사적 제339호)을 비롯해 한옥마을, 오목대와 한벽루, 치명자산 성지까지 연계되어 성지순례와 역사문화 체험이 어우러지는 중심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전동 성당의 사적공원화 사업은 특히 한국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됨으로써 그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전동 성당과 치명자산 성지의 상징성에 시복식의 의미가 더해져 세계적인 성지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 평화신문, 2003년 6월 22일, 29일 리길재 기자 & 2009년 7월 5일 이창훈 기자의 기사 일부 수정 편집(최종수정 2015년 11월 6일)]

모바일용 요약 설명
전동 성당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워 참수형을 받은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한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동 성당 터는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라고 불립니다.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김유산 토마스, 유항검의 동생 유관검과 이우집, 윤지충의 아우 윤지헌이 순교한 곳이기도 합니다.

전동 성당 초대 주임인 파리 외방전교회 보두네 신부는 20세기 초 전동 성당을 지을 때 일제 통감부가 전주에 신작로를 닦으며 풍남문 성벽을 헐자 이 성벽 돌과 흙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이를 가져다가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습니다. 유항검을 비롯한 전동 성당 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의 목을 효수했던 성벽의 돌을 성당 주춧돌로 사용함으로써 이곳이 순교지일 뿐 아니라 ‘신앙의 요람’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1981년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동 성당은 2006년부터 대대적인 보수사업을 시행했고 이어서 전동 성당 사적공원화 사업을 추진하여 2011년 12월 사제관 뒤편에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계속해서 전북 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된 사제관을 보수해 유물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주변 부대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사적공원화 사업이 완료되면 전동 성당은 인근의 풍남문(보물 제308호)과 경기전(사적 제339호)을 비롯해 한옥마을, 오목대와 한벽루, 치명자산 성지까지 연계되는 성지순례와 역사문화 체험의 중심축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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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교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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