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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부산교구 >  부산 조씨 형제 묘
[소개] [찾아가는길]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죽어서도 나란히
지번주소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272(배문한 신부 생가) 
도로주소 부산시 강서구 생곡길 262
전화번호 (051)971-5618
홈페이지
관련기관 명지 성당    (051)271-7711
관련주소 부산시 강서구 명지오션시티4로 35
조씨 형제 순교자 묘소 입구. 입구 바로 전에 고 배문한 신부의 생가가 있다.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배씨(裵氏) 가문의 선산에는 배씨가 아닌 조씨(曹氏) 성을 가진 형제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병인박해 당시 신앙을 증거하고 죽음을 택한 조석빈(曺錫賓, 1825-1872년?)과 조석증(曺錫曾, 1834-1872년?) 형제 순교자의 유해가 문중의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선산을 앞에 둔 배씨 문중 선산에 묻혀 있는 것이다.
 
경상남도 김해 지방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당시이다. 경상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다른 지방들과 마찬가지로 천주교인들을 징계하기 위해 떠나보낸 귀양길이 오히려 유배지에 복음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는 것은 어쩌면 하느님의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해의 서슬에 체포되어 유배형을 받은 이학규에 의해 김해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밀양 박씨 문중의 순교자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 가정의 선대(先代)가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박대식의 부친 박만혁(?-1810년)이 김해군 진례면 시례리(詩禮里)에서 이학규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후 그의 아들 대붕 · 대흥 · 대식 3형제가 모두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막내인 박대식이 1868년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순교했다.
 
형제 순교자 조석빈과 조석증 묘와 제대를 겸한 묘비.어찌 되었든 이들의 입교 이후 진례, 녹산, 노루목 등에 신자촌이 형성됐고, 1839년 기해박해 때는 밀양 단장(丹場)의 가물리와 법흥리 등의 신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감으로써 이 지방의 신자촌들이 더욱 번성했다.
 
원래 뼈대 있는 유교 집안이었던 창녕(昌寧) 조씨 김해파의 30대 손으로, 부친 조대연의 5형제 중 셋째와 넷째로 태어난 석빈과 석증은 천주교로 개종한 뒤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조씨 형제는 모습과 나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나 다 같이 학문과 인품이 뛰어났으며 한문 성경을 한서 속에 감춘 나무상자를 매고 주로 양반들을 찾아다니면서 천주학 연구와 전교에 앞장섰다. 생곡의 배씨 사랑방에도 자주 들러 유학(儒學)과 서학(西學)의 비교 연구에 힘썼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2년 뒤인 1868년 무진년에 두 형제는 가락면 상덕리 편도 부락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동래 아문으로 끌려간 이들은 배교를 강요하는 관헌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당하지만 배교를 완강히 거부하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 김해읍 왜장대에서 순교했다.
 
1997년 형제 순교자 묘소 뒤 바위 위에 건립한 십자가에서 본 묘역과 마을 모습.고문을 하는 사람조차도 이들의 굽힘 없는 신앙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지만 결국 조씨 형제는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관헌은 먼저 형 석빈을 가차 없이 참수하고 나서 다시 동생 석증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배교하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그는 “형님의 목에 십자가 꽃이 피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도 속히 참수해 주기를 간청함으로써 마침내 그 역시 참수되어 형제가 함께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갈대에 싸여 온 형의 거구와 이엉에 덮여 온 동생의 왜소한 알몸은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 하여 조씨 문중의 반대로 선산에 묻히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의 고(故) 배문한(裵文漢) 신부의 3대조(祖)인 배정문(裵禎紋) 공에 의해 집 뒤 언덕 밭에 암장되었으며, 그 후 배문한 신부 본가에서 4대에 걸쳐 순교자 조씨 형제의 묘를 보호 · 관리하여 왔다.
 
형 석빈은 손(孫)이 없었고 동생 석증은 아들이 있었으나 그나마 아들 대(代)에서 후손이 끊겼다고 한다. 그 후 이들 형제의 순교 사실에 관한 구전이 배씨 집안을 통해 대대로 전해오다가 1989년 6월 19-20일 부산교구에 의해 묘지 발굴과 확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형제 순교자 묘소 입구 고 배문한 신부 생가에 건립된 기념비. 고 배문한 신부는 1994년 바다에 빠진 신자들을 구하고 선종했다.1995년 5월 29일 교구장 이갑수 주교의 집전으로 순교자 형제 묘소 단장미사를 봉헌하였다. 형제 순교자 묘소 앞에는 묘비를 겸한 돌 제대를 세웠고, 1997년 11월 12일에는 부산교구 교회사연구소 ·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 배문한 사제 사랑 기념사업회에 의해 묘소 주변에 십자가의 길 14처(최봉자 레지나 수녀 조각)를 설치하고 묘소 뒤 바위 위에 대형 돌 십자가를 세웠다. 또한 1998년 8월에 형제 순교자 묘 바로 아래에 있는 고 배문한 신부(1994년 8월 5일 강원도 삼척시 인근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신자들을 구하고 선종했다)의 생가(生家)를 개수하여 순례자들이 쉬었다 갈 수 있게 강당과 방도 마련하였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1년 11월 8일)]

모바일용 요약 설명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배씨 가문의 선산에는 병인박해 당시 신앙을 증거하고 죽음을 택한 조석빈과 조석증 형제 순교자의 묘가 있습니다. 창녕 조씨 김해파의 30대 손으로 태어난 석빈과 석증은 천주교에 입교한 후 열심히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조씨 형제는 모습과 나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나 학문과 인품이 뛰어났으며 한문 성경을 한서 속에 감춘 나무상자를 매고 주로 양반들을 찾아다니면서 천주학 연구와 전교에 앞장섰습니다. 생곡의 배씨 사랑방에도 자주 들러 유학과 서학의 비교 연구에도 힘썼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2년 뒤인 1868년 무진년에 두 형제는 가락면 상덕리 편도 부락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동래 아문으로 끌려간 이들은 배교를 강요하는 관헌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당하지만 배교를 거부하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 김해읍 왜장대에서 참수되었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사학죄인이라 하여 문중의 반대로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방치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의 고 배문한 신부의 3대조인 배정문 공에 의해 집 뒤 언덕 밭에 암장되었으며, 그 후 배문한 신부 본가에서 4대에 걸쳐 조씨 형제의 묘를 보호 · 관리하여 왔습니다.

조씨 형제의 순교에 관한 구전이 배씨 집안을 통해 대대로 전해오다가 1989년 6월 부산교구에 의해 묘지 발굴과 확인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995년 5월 이갑수 주교의 집전으로 순교자 형제 묘소 단장미사가 봉헌되었고 묘비를 겸한 돌 제대를 세워졌습니다. 1997년 11월 부산교구 교회사연구소 ·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 배문한 사제 사랑 기념사업회에 의해 묘소 주변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설치하고 묘소 뒤 바위 위에 대형 돌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또한 1998년 8월 형제 순교자 묘 바로 아래에 있는 고 배문한 신부(1994년 8월 5일 강원도 삼척시 인근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신자들을 구하고 선종)의 생가를 개수하여 순례자들이 쉬었다 갈 수 있게 강당과 방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