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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명
지역명
내용

부산교구 >  살티 김영제와 김 아가타 묘
[소개] [찾아가는길]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온몸에 흐른 피고름과 동정녀의 희생
지번주소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산218-1 
전화번호 (052)262-5312
팩스번호 (052)262-5316
홈페이지 http://eonyang.pbcbs.co.kr
관련기관 언양 성당    
관련주소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성지 주위를 둘러싼 십자가의 길을 지나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순교자 묘와 가족묘가 자리하고 있다.부산 교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소인 살티 공소에 그 묘가 모셔져 있는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 김영제 베드로(1827-1876년)는 일찍이 그 위세가 지방에 크게 떨치던 집안의 후손이었다.
 
그의 집안이 천주교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조부 김교희 프란치스코(일명 재권, 1775-1834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부는 당시 서울을 왕래하면서 남인파에 속한 선비이자 초대 천주교회의 창설자인 권일신, 정약용 등 양반들과 접촉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익히고 함께 영세함으로써 부산 지방 최초의 신자가 되었다.
 
그의 아들 김상은 야고보(1804-?) 역시 부친의 뜻을 따라 입교해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조부 김교희는 교난을 피해 인근 간월골(현재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로 피신했다. 여기서 김영제는 김상은과 경주 최씨(마리아)의 사이의 2남 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순교자 묘역과 가족 묘역 사이에 설치된 성모상.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가 전국을 휩쓸면서 쫓기던 신자들은 영남 지방에까지 밀려왔다. 이때 김상은 야고보는 지방 관리들의 횡포와 고발, 재산 탈취, 집안 어른들의 배교 강요를 견디다 못해 간월을 떠나 경상북도의 자인골, 청도의 정자동, 월성군 탑곡 등을 전전하며 피해 다니다 박해의 칼날이 무디어진 1850년 12월 다시 간월의 불당골로 돌아왔다.
 
간월로 돌아온 김영제는 부산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당시 경상도 지방을 담당한 다블뤼(Daveluy) 안토니오 신부 및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맞이해 공소를 설립하고 1858년에는 공소 건물을 짓기도 했다. 당시 간월골에는 경기 · 충청 · 전라도 등지에서 박해를 피해 온 많은 신자들이 모여 교우촌을 이루었다. 울산 장대에서 순교한 후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등도 이 지방에서 살다가 붙잡혔다.
 
1860년 경신박해로 김영제는 부친과 여동생 김 아가타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부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이 박해는 조정과 무관하게 지방 관리들이 사사로이 일으킨 것으로 조정의 반대와 당사자들의 파면 등으로 9개월 만에 그치고 대부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김영제만은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대구 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풀려났다. 결국 경신박해의 여파로 인해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공소도 불태워져 없어졌다.
 
게다가 1866년 병인박해의 화가 전국에 미치고 무진박해가 경상도 지역을 휩쓴 1868년 7월 김영제는 또다시 체포되고 이때 간월, 대재 등지에 숨어 살던 많은 신자들이 잡혀가게 되어 간월 공소는 물론 1840년경 형성된 대재 공소도 함께 소멸되었다.
 
순교자 김영제 베드로(좌)와 누이동생 동정녀 김 아가타의 묘. 2008년 간월에 있던 김 아가타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였다.김영제가 잡히면서 집은 불태워지고 가산은 몰수됐으며 가족들은 또다시 흩어지고 말았다. 그는 경주부로 이송되어 그곳 감옥에서 허인백 등 울산의 순교자 세 사람을 만나 순교하기를 결의했으나 이들 세 사람만 울산으로 이송되어 순교했고 김영제는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대구에서 그는 전교 신부들의 행방을 묻는 관리들로부터 극심한 고문과 문초를 당했다. 이때 받은 고문으로 종지뼈가 으스러져 불구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굳건하게 믿을 지켜 한양까지 이송되었다가 다행히도 1869년 봄, 마침 나라에 경사가 있어 특별히 사면되어 죽지 않고 9개월 만에 풀려났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영제는 피신한 가족들을 수소문해 의령 남씨 등이 피신한 안살티에 정착한 후 여기서 다시 살티 공소를 설립해 회장직을 맡기도 했으며 박해가 뜸해지면서 논밭을 일굴 수 있는 평지를 찾아 현재의 살티로 옮겨 와 살게 되었다.
 
하지만 혹독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이 전신으로 퍼지고 상처 부위에서는 항시 피고름이 흘러 한겨울에도 바지를 걷고 진물을 받아 내야 하는 고통 속에 살다가 그는 결국 1876년 1월 24일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고문으로 인해 생긴 병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교회에서는 ‘장하 순교’(杖下殉敎)라 일컫는다.
 
십자가 뒤에서 바라본 순교자 묘역 전경.이렇듯 순교자 김영제는 양반 가문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신분이었으나 오직 천주를 따르겠다는 굳은 신앙 하나로 세상의 안위를 버리고 순교의 가시밭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현재 살티 공소에서 5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김영제의 묘소는 1981년 11월 언양 성당 신자들이 정성을 모아 말끔하게 단장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1994년 4월 2일 부산교회사연구소 주관으로 서북쪽으로 약 18m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유해를 이장하고, 울산 본당 신자들의 후원금을 모아 분묘를 재단장하고 순교비를 건립하는 동시에 십자가, 제대, 예수 성심상, 성모상, 성지 표지석 등을 세웠다.
 
그리고 2008년 3월 4일 간월에 있던 여동생 김 아가타의 묘도 김영제 묘 옆으로 이장하여 그해 9월 29일 축복식을 가졌다. 나란히 자리한 남매 묘소 우측에 있는 가족묘 상단에는 부친 김상은과 모친 최 마리아의 묘도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5년 7월 22일)]

순교자 묘역과 가족 묘역을 둘러싸고 조성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
순교자 묘역과 가족 묘역을 둘러싸고 조성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

모바일용 요약 설명
부산 지방 최초의 신자가 된 조부 김교희 프란치스코와 부친 김상은 야고보에게 신앙을 물려받은 김영제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부친과 함께 여러 교우촌을 전전하다가 간월로 돌아와 공소를 설립하고 1858년에는 공소 건물을 짓기도 했습니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체포되어 한양까지 압송되었다가 풀려난 그는 1868년 무진박해 때 다시 체포되었고, 이때 많은 신자들이 붙잡혀 간월 공소는 물론 대재 공소 또한 소멸되었습니다. 김영제가 잡히면서 집은 불태워지고 가산은 몰수됐으며 가족들은 또다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대구에서 그는 전교 신부들의 행방을 묻는 관리들로부터 극심한 고문과 문초를 당했고, 이때 받은 고문으로 종지뼈가 으스러져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한양까지 이송되었다가 9개월 만에 특별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피신한 가족들을 수소문해 안살티에 정착한 후 여기서 다시 살티 공소를 설립해 회장직을 맡기도 했으며, 박해가 뜸해지자 농사가 가능한 평지를 찾아 현재의 살티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이 전신에 퍼지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결국 1876년 1월 24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살티 공소 인근에 위치한 김영제의 묘소는 1981년 11월 언양 성당 신자들이 정성을 모아 말끔하게 단장하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994년 4월 부산교회사연구소 주관으로 서북쪽으로 약 18m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유해를 이장하고, 울산 본당 신자들의 후원금을 모아 분묘를 재단장하고 순교비를 건립하는 동시에 십자가, 제대, 예수 성심상, 성모상, 성지 표지석 등을 세웠습니다. 2008년 3월에는 간월에 있던 여동생 김 아가타의 묘를 김영제 묘 옆으로 이장하여 그해 9월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나란히 자리한 남매 묘소 우측에 있는 가족묘 상단에는 부친 김상은과 모친 최 마리아의 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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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미사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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