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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명
내용

부산교구 >  살티 공소
[소개] [찾아가는길]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이곳에 오면 살 수 있었나?
지번주소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144-4 
도로주소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살티길 9
전화번호 (052)262-5312
팩스번호 (052)262-5316
홈페이지 http://eonyang.pbcbs.co.kr
관련기관 언양 성당    
관련주소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살티마을 입구 공소 표지판. 공소에서 조금 더 가면 순교자 김영제 베드로의 묘가 있다.간월 공소와 대재 공소가 박해로 파괴되면서 설립되어 부산 교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소가 된 살티 공소(1868년~)는 지금은 번잡한 관광지에 속해 있지만 박해 시대에는 수목이 울창해 대낮에도 길을 잃기 십상이었던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이 찾아 들기 힘든 은밀한 지역이었기에 박해시대에 신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피난처의 구실을 해주었던 곳이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언양 나들목에서 12k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살티는 극심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杖毒)이 원인이 되어 1876년 1월 24일 치명한 김영제 베드로의 묘가 있는 곳으로 초대 교회 때부터 교우촌이자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의 고장이기도 하다.
 
언양 성당,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 석남사 앞 주차장에서 1km쯤 더 간 곳에 살티 공소가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밀양군 · 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41m)의 중턱에 위치한 살티는 원래 예로부터 전쟁을 위한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해서 시현(矢峴)으로도 불리었다.
 
그러다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간월과 언양 지방에 살던 신자들이 호랑이 등 맹수가 많아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숨어 지내기 좋다는 이유로 이곳 안살티(현재 청수골 주변인데, 아무런 흔적도 없다)로 피난을 와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박해를 피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살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공소 종탑과 정문 위의 성모상.즉, ‘살티’라는 말의 유래는 “당시 관헌들이 교우들을 찾아 석남사까지 왔다가 경주로 빠져 나감으로써 이곳의 교우들이 죽음을 면하고 무사히 살아남아 ‘살 수 있는 터’라고 하여 살티 혹은 살틔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1981년 11월 언양 본당 신자들의 정성으로 김영제 베드로의 묘소를 말끔하게 단장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묘지 주변은 후손들이 1984년과 그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중장비를 동원해 정지 작업을 해 둔 채 보존하여 오다가 부산 교회사 연구소의 주관으로 1994년 4월 2일 서북쪽으로 약 18미터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유해를 이장하고, 순교자의 5대손인 김윤근 베드로 신부가 울산 본당 신자들의 후원금을 모아 분묘를 단장하고 순교비를 건립하는 동시에 십자가, 제대, 예수 성심상 그리고 성모상 및 성지 표지석을 세워 묘역을 다듬었다.
 
살티 공소 인근의 간월골에는 1815년 을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큰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신자수도 늘고 공소 건물도 신축되었다. 하지만 1860년 경신박해,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로 공소는 불타 버렸고 교우촌은 폐허가 되었다. 이때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간월골의 몇몇 교우들은 깊은 산 속으로 피해야 했고 새로운 은신처로서 나무가 울창하고 맹수들이 득실대던 이곳 살티로 숨어들었다.
1982년 부산교구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한 공소 내부.
 
병인박해가 경상도 지역을 휩쓴 1868년 간월골의 김영제 베드로는 체포되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허인백 야고보와 함께 경주로 압송되었다. 그 후 김영제를 제외한 세 사람은 울산 장대에서 순교하였고,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한편 김영제는 다시 서울로 이송되어 9개월 동안 무수한 매를 맞는 고초를 겪은 후 고종의 혼인날을 기해 특별히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안살티에 정착했다.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안살티에 살던 신자들은 논밭을 일굴 수 있는 평지를 찾아 현재의 공소가 있는 살티로 이주하여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숱한 고문으로 반죽음이 되어 돌아온 김영제는 그 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1876년 1월 24일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현재 그의 묘소는 이곳 살티의 가족 묘소에 안장되어 있고 그의 후손들도 이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후손들에 의해 순교자들의 신앙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살티는 최재선 주교, 김문옥 · 이종창 · 김윤근 신부 등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聖召)의 고장으로 자라났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1982년에 부산교구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4년 8월 27일)]

도로변 살티마을 입구에서 조금 들어와서 본 공소 전경.

모바일용 요약 설명
살티 공소(1868년~)는 인근의 간월 공소와 대재 공소가 박해로 파괴되면서 설립되어 부산 교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소입니다. 박해 시대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맹수가 많아 사람이 찾아 들기 힘든 은밀한 지역이었기에 신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피난처였습니다. 혹독한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안살티에 정착해 살던 신자들은 논밭을 일굴 수 있는 평지를 찾아 현재의 공소가 있는 살티로 내려와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공소 인근에는 극심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杖毒)으로 고생하다가 1876년 살티에서 치명한 김영제 베드로의 묘가 있습니다. 후손들에 의해 순교자들의 신앙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살티는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온 교우촌이자 최재선 주교를 포함해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聖召)의 고장입니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1982년에 부산교구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사시간
미사구분 요일 시간 기타사항
주일미사 06:30  미사 일정은 언양 성당 것입니다.
10:30  교중미사
19:30  
평일미사 06:30  
19:30  
10:00  
10:00  
19:30  
16:00  어린이미사
19:00  특전/청소년미사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