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홈 서울대교구 | 가톨릭정보 | 뉴스 | 메일 | 갤러리 | 자료실 | 게시판 | 클럽 | UCC | MY | 로그인
|  성경  |  매일미사  |  성무일도  |  기도서  |  성가  |  성인  |  성지  |  가톨릭사전  |  교리서  |  교회법  |  공의회  |  소리도서  |  7성사  |  주소록  |
   성경 
구약성경
신약성경
성경본문 검색
성경소제목 검색
성경-성서 비교
4복음서 대조
성서해설(공동번역)
성경자료실
성경묻고답하기
성경쓰기
성경쓰기느낌나누기
My 성경 책갈피 책갈피
   매일미사 
오늘의 미사
전례력으로 찾기
미사통상문
우리들의 묵상|체험
전례/미사자료실
소리매일미사
성무일도
   가톨릭 기도서 
주요기도문
특수기도
여러가지기도
   가톨릭성가 
성가검색
악보감상실
전례음악자료실
   가톨릭성인 
오늘의 성인
성인목록
성인앨범
성인자료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성지/사적지소개
성지/사적지목록
성지/사적지앨범
성지/사적지게시판
성지/사적지자료실
   가톨릭 사전 
통합 검색
가톨릭대사전
전례사전
천주교 용어사전
천주교 용어자료집
   가톨릭 교리서 
교리서 요약편
   교회법 
   바티칸공의회 문헌 
   소리도서 
성지명
지역명
내용

의정부교구 >  신암리 성당
[소개] [찾아가는길]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의정부 지역 신앙의 뿌리가 된 교우촌
지번주소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264-3 
도로주소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로489번길 27-32
전화번호 (031)862-3455
홈페이지
2008년 공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은인들의 도움으로 건립한 새 성당.신암리는 지금은 농촌이지만 예전에는 산림이 울창했던 곳으로, 조선 말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1900년대 초 서울 종현(현 명동) 본당 관할이었던 의정부 지역은 구한말 박해를 피해 도자기를 굽던 교우촌이 신앙의 뿌리가 되었다. 구한말 우고리(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와 신암리(양주시 남면 신암리) 일대에 박해를 피해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교우촌이 형성된 것이다.
 
신암리에 개성 본당 관할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09년이다. 이때 개성 본당의 주임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르 장드르(Le Gendre, 崔昌根)였고, 1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신암리로 와서 판공성사를 베풀고 미사를 집전하였다. 그런데 개성과 신암리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신앙을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당시 신암리 공소에는 300여 명의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박성로 프란치스코가 공소회장을 맡고 있었다. 1924년 10월 27일 개성 본당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가 신암리 공소와 우고리 공소를 방문하였다.
 
성당 제대.그 후 1925년 3월 박원문 마르코 회장시절에 본당으로 승격되어 2년 후인 1927년 5월에 가서야 최문식(崔文植) 베드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연천, 양주, 파주, 포천, 가평, 고양군 일대를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당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열악하여 도저히 사제의 생활을 뒷받침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3년 뒤인 1930년 4월에 최문식 신부는 미리내로 전임되고 본당은 폐지되어 다시 행주 본당의 관할 공소가 되었고, 이때 당시 신암리 공소의 회장은 이재현 베네딕토였다.
 
1933년 9월 26일 신암리 공소에 새로 개축된 경당에서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주례로 이하삼 회장 등 신암리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79위 순교복자 첨례 대축일 미사가 거행되었다. 1935년에는 양주군 덕정리에 본당이 생기면서 그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45년 12월 김피득(金彼得) 베드로 신부가 덕정리 본당의 주임으로 부임해 왔다. 김피득 신부는 덕정리 성당을 매각하고 의정부시 의정부동에 대지 1,625평을 매입하여 성당을 이전하고 본당 명칭을 의정부 본당으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신암리 공소는 의정부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6.25 전쟁 때 신암리는 폭격을 당해 초토화되고 말았다. 1952년 9월 의정부 본당에 이계광(李啓光) 세례자 요한 신부가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신암리 공소는 차츰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53년부터 1955년 사이에 박복선 형제의 주도로 신암리 신자들의 노력과 영국 군인들의 도움을 얻어 공소를 재건하였다.
2008년 공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은인들의 도움으로 건립한 순교자 박 다미아노의 집(교육관 및 사제관).
구한말 박해를 피해 도자기를 굽던 교우촌이 신앙의 뿌리가 된 신암리 신앙 공동체는 1909년 개성 본당 관할 공소로 설립된 후 1925년 3월 본당으로 승격돼 본격적인 지역 복음화의 길을 걸었다. 1930년 다시 공소로 환원된 후 지난 1959년부터 동두천 본당 공소로 편입되어 신앙의 명맥을 이어 오다가 2008년 9월 12일 준본당으로 승격하는 등 다난한 역사를 걸어왔다.
 
2005년 3월 30일 본당 승격 80주년을 맞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도시 지역 신자들의 피정 공간으로 공소를 개방하는 등 공소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나섰다. 2008년 10월 5일 신암리가 고향인 서울대교구의 이경훈(李庚薰)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공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은인들의 도움으로 새 성당과 순교자 박 다미아노의 집(교육관 및 사제관) 건물을 새로 건립하여 이곳 출신 순교자로 전해지는 박 다미아노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리고 2013년 8월 22일 준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은인들의 도움으로 새 성당의 성상과 성물 등을 완전히 갖추고 2015년 10월 24일 이경훈 신부 주례로 준공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출처 : 의정부교구 문화미디어국, 의정부교구 순례길 안내,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5년 11월 2일)]

모바일용 요약 설명
신암리는 구한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와 도자기를 굽던 교우촌의 하나로 의정부 지역 신앙의 뿌리가 된 곳입니다. 1909년 개성 본당의 관할 공소로 설립된 후 1925년 3월 본당으로 승격되어 1927년 5월 최문식 초대 주임신부가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본당의 여건이 어려워 1930년 본당이 폐지되고 행주 본당의 공소가 되었습니다. 1935년 덕정리 본당 공소가 되었다가, 1945년 덕정리 본당이 의정부로 이전하고 의정부 본당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그 관할 공소가 되었습니다. 6.25 때 폭격으로 초토화되었으나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신암리 신자들은 영국 군인들의 도움을 얻어 공소를 재건했습니다. 1959년 동두천 본당 공소로 편입되어 신앙의 명맥을 이어 오다가 2008년 9월 12일 준본당으로 승격하는 등 다난한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2005년 3월 30일 본당 승격 80주년을 맞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도시 지역 신자들의 피정 공간으로 공소를 개방하는 등 공소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나섰습니다. 2008년 10월 5일 신암리가 고향인 서울대교구의 이경훈 신부가 공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은인들의 도움으로 새 성당과 순교자 박 다미아노의 집(교육관 및 사제관) 건물을 새로 건립하여 이곳 출신 순교자로 전해지는 박 다미아노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8월 22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새 성당의 성상 및 성물 등을 모두 갖추고 2015년 10월 준공 감사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시간
미사구분 요일 시간 기타사항
주일미사 10:30  교중미사
평일미사 06:00  
06:00  
10:00  
06:00  
06:00  
06:00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