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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전주교구 >  고산 성당
[소개] [찾아가는길] [순교자]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되재 성당을 모태로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지번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98 
도로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7길 20
전화번호 (063)262-4171
팩스번호 (063)261-5171
홈페이지
전자메일 gosan4520@hanmail.net
고산 성당과 되재 성당
 
고산 성당의 모태인 되재 성당. 2004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된 이후 복원작업을 시작해 2009년 축복식을 가졌다.전북 완주군 고산 지방은 한국 천주교 창립과 더불어 형성된 교우촌들이 산재해 있어 우리 믿음의 고향과 같은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고산은 전주시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동북쪽으로 약 18km 떨어져 있다. 갈대가 널브러진 만경강을 지나 읍내로 들어서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고산 성당이 있다. 성당 부지인 동쪽 대나무 숲을 경계로 해 고산 초등학교가 있고, 북동쪽 고산천변에는 향교가 있다.
 
현 위치에 고산 본당이 설립된 것은 1958년이지만 그 모태는 1891년 10월 10일 설립된 되재 본당이다. 되재 본당의 후신인 고산 본당은 성당이 건립되던 해인 1894년 11월 1일을 본당 봉헌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은 본당 주보인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이다. 고산 · 되재 지역은 박해시대부터 전라도로 이주해오는 교우들의 관문 역할을 한 곳으로, 고산 지역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이다. 고산 지역은 대둔산과 천호산 일대 깊은 골짜기가 많아 박해를 피해 각처에서 몰려온 신자들이 숨어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이 일대에 저구리 · 넓은바위 · 다리실(천호) · 차돌박이(백석) · 석장리 · 되재 등 교우촌이 무려 56곳이나 됐다고 전해진다.
 
교우촌이 많았던 만큼 이 지역 박해도 심했고 순교자들도 많이 배출했다. 현재 천호 성지에 안장돼 있는 이명서 베드로 · 손선지 베드로 ·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 한재권 요셉 등 순교성인 4위와 김영오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순교자 110여명이 고산 지역 출신이다. 또 한국전쟁 당시 대둔산과 천호산 일대 창궐한 빨치산에 의해 순교한 신자들도 상당수 있다. 고산 출신 성직자로는 이약슬 · 이종필 · 허일옥 · 김종택 · 김순태 · 경규봉 · 강명구 · 장상원 · 김광태 신부 등이 있다.
 
옛 되재 성당 모습.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고산 지역에서는 성당이 세워지는데 1895년에 완공된 ‘되재 성당’이다. 되재 성당은 단층 5칸짜리 한옥으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서울 약현(현 중림동약현) 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일 뿐 아니라 한옥 성당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이다. 고산 본당의 전신인 되재 본당은 초대주임인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가 1891년 되재 인근 차돌배기(현 백석, 전북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를 정하고 전교활동을 시작하면서 태동했다. 이어 1893년 4월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비에모(Villemot, 禹一模) 신부는 되재(화산면 승치리)에 성당터를 구해 1894년 1월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동학혁명으로 위협을 느낀 비에모 신부는 공사를 잠시 중단했다가 이듬해인 1895년 1월에 다시 시작해 2월 완공했다.
 
전라북도 북부 지역 복음화의 산실 역할을 했던 되재 성당은 1942년 공소였던 수청이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오히려 수청 본당 관할 공소가 됐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그해 가을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되재 성당이 빨치산 거점이 될 것을 우려한 국군이 성당에 불을 놓았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1954년 임시로 공소건물을 지어 생활했고 1958년 본당 소재지가 고산으로 옮겨가면서 되재는 고산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복원작업을 거쳐 2009년 축복식을 가진 되재 성당 내부. 가운데 남녀 좌석 구분을 위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한수 이남의 첫 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되재 성당의 옛 모습을 되살리고자 신자들은 2004년 관계당국에 되재 성당을 지정문화재로 신청했고, 발굴 조사 작업 끝에 되재 성당은 그 해 7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전주교구와 완주군의 복원작업에 따라 2005년에 기존의 공소건물을 해체하고, 2006년부터 복원사업을 시작해 성당과 종탑 등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화장실 · 주차장 · 진입로 등 부대시설을 정비, 2009년 10월 24일 전북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현지에서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
 
전라북도와 완주군이 공동으로 복원한 되재공소는 가로 3칸, 세로 8칸에 바닥 면적 143㎡(42.3평)인 한옥성당과 나무 종탑으로 이뤄져 있다. 성당 내부는 사제가 신자를 등 뒤로 한 채 미사를 드리도록 제대를 벽에 붙인 옛 모습을 재현했다. 또 신자석 가운데에 고정식 칸막이를 설치해 남녀 신자들이 성당에 들어오면 왼편 오른편으로 갈라 앉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한 옛날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그리고 되재 성당 위쪽 산 중턱에는 성당이 설립되기 전 고산 지역에서 사목하다 열병으로 선종한 프랑스인 조스(Josse, 1851~1886) 신부와 라푸르카드(Lafourcade, 1860~1888) 신부의 묘소가 있다.
 
현 고산 성당은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 1994년에 완공되었다. 성당 외관은 한옥과 교회의 전통 건축양식인 바실리카 형식을 절충한 건물로 장방형에 종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고산 성당을 설계한 김승배(단국대 종교건축연구실)씨는 “옛 되재 성당이 보여주었던 교회 건축의 토착화 의지를 계승해 설계했으나 복고적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건축뿐 아니라 성미술 · 조명 · 설비 등을 모두 복음적이며 미래지향적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1994년에 완공된 현 고산 성당 내부.고산 성당은 우선 해발 55m 언덕에 자리한 지리적 공간미를 잘 살리고 있다. 사방에서 보이는 위치에 종탑을 배치해 놓았고, 성당 전면에 넓은 광장을 두어 남서쪽 원경과 북동쪽 수려한 근경을 그대로 살려 주변 자연환경과 성당 건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제대 벽면에 ‘하늘과 땅의 만남’을 주제로 한 벽화가 있다. 조광호(인천가톨릭대 교수) 신부 작품이다. 벽화는 무명 순교자의 피와 땀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앙고백을 보여주는데 하늘과 땅, 그리고 둘 사이를 이어주는 19개 계단(지상의 12계단과 천상의 7계단)이 있고, 계단 양편에는 생명의 나무가 있다. 천상의 붉은 빛 십자가는 한국 순교자를 상징하고, 조선시대 형구에 나 있는 7개 구멍은 7성사를 상징한다. 또 좌우 생명의 나무는 고산지방의 특산물이요 우리 농촌을 상징하는 감나무로 땅과 농촌이 우리 삶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제대 앞면에는 성부의 ‘손’과 성자의 ‘십자가’, 그리고 성령의 ‘비둘기’와 함께 삼위일체의 상징인 삼각형이 양각돼 있으며 제대 좌우로 ‘A’(알파)와 ‘Ω’(오메가)가 부조되어 있다.
 
성당 네 면의 유리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다. 제대를 중심으로 오른쪽 유리화는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왼쪽 유리화는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과 기적의 빵과 물고기로 나타내고 있다. 제대 정면 2층 성가대석 뒤편에 있는 7개 유리화 창은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는데 청색 주조에 붉은 색을 대담하게 배열해 강렬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성가대석 뒤편 유리화.

한편 고산 본당은 2014년 11월 1일 본당 설립 120주년 기념미사에서 되재 성당에 있던 낡은 십자가와 신자들이 정성껏 쓴 성경필사본을 봉헌하였고, 본당 설립 120주년 기념교육관을 건립하는 등 본당의 120년 신앙 역사를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산 본당은 2016년 현재 1900여명의 신자와 13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출처 : 
평화신문, 2005년 1월 23일, 리길재 기자와 2009년 11월 1일, 이창훈 기자의 기사 내용을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7년 5월 17일)]
 
 
고산 본당(高山 本堂)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99소재. 1893년에 설립된 되재 본당[升峙본당]의 후신으로 주보는 성모 영보. 되재 본당은 이후 1940년대의 수청 본당(水淸本堂) 시기를 거쳐 일시 폐지되었다가 1958년 4월 25일 고산 본당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고산 본당의 모태인 되재 성당의 복원된 모습.되재 본당 시기(1893-1944)  고산 본당의 전신인 되재 본당의 역사는 1893년 4월 비에모(Villelnot. 禹一模) 신부가 차돌배기(현 백석,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를 정하고 전교를 시작한 때로부터 시작된다. 비에모 신부는 다음해 초 거처를 되재(화산면 승치리)로 옮기고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으로 전라도 교회가 핍박을 당하자 일시 서울로 피신하게 되었다.
 
1895년 초 다시 되재에 부임하여 성당 공사를 재개한 비에모 신부는 같은 해 성령 강림 축일에 주보를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로 정하고 첫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이때 완성된 성당은 전통 한옥 형태의 팔작 기와에 단층 5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자재는 충남 논산의 쌍계사란 절을 헐면서 나온 목재를 이용하였다. 이후 비에모 신부는 전라도 북부의 산간 지대를 순방하며 교세를 확장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1897년 본당을 2대 미알롱(A. Mialon, 孟錫浩) 신부에게 인계하고 서울로 전임되었다.
 
처음 비에모 신부가 이 산곡에 본당을 정한 이유는 아직 박해의 여파가 남아 있었고, 이로 인해 신자들이 주로 전라도 북부 산간 지대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되재 본당이 설립된 뒤 많은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성당 주변에는 큰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나, 그 후 신자들의 이주로 교세가 위축되었다. 한편 본당 주임 신부는 제7대부터 한국인 신부로 바뀌어 이성만(李成萬) 이냐시오(1930~1936) 신부, 제8대 박문규(朴文圭) 미카엘(1936~1940) 신부, 제9대 임인교(任仁敎) 바오로(1940~1943) 신부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던 중 제10대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기 1944년 신병으로 본당을 비우게 되면서 다시 공소로 전락하였다.
 
고산 성당 외관. 한옥과 바실리카 형식을 절충한 장방형 건물에 종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수청 본당 시기(1942-1950)  이곳은 본래 되재 본당에 소속된 공소였다. 그러다가 1942년 6월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 신부가 부임하게 되었다. 김 신부는 이때 기존의 공소 건물을 성당으로 삼아 사목에 임하였으며, 1944년 주임 신부의 공석으로 폐지된 되재 본당 지역까지를 관할하였다. 그 결과 되재 본당은 수청 본당의 공소로 남게 되었다. 이후 수청 본당은 제2대 서정수(徐廷壽, 알렉스) 신부가 재임하던 증 6 · 25 동란이 일어나 성당이 파괴됨은 물론 교우촌이 모두 불타 버렸고, 이로 인해 본당이 폐쇄됨과 동시에 삼례(參禮) 본당의 공소로 되었다가 1958년 고산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고산 본당 시기(1958-현재)  1951년 삼례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활동하던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신부는 일찍부터 관내의 폐쇄된 본당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본당을 설립하기 위해 현재의 고산 본당 부지를 매입하고 성당을 신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즉시 본당이 신설되지는 않았다. 이 신축 성당을 중심으로 고산 본당이 설립된 것은 1958년 4월 25일이었으며, 이로써 기존의 되재 본당과 수청 본당의 공소들은 모두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한 송남호(宋南浩, 요셉) 신부는 이후 5년여를 본당에 재임하면서 본당 정착을 위해 노력하다가 전임되었다. 그 뒤를 이어 여러 신부들이 사목에 임하다가 1992년 1월부터 박종충(박종충, 레오) 신부가 부임하여 활동하고 있다. 현 고산 성당은 1994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완공하였다. 성당 외관은 한옥과 교회의 전통 건축양식인 바실리카 형식을 절충한 장방형 건물로 종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2016년 현재 본당의 신자수는 1,914명이며, 13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고,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들이 사목을 돕고 있다.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권에서 발췌, 내용 일부 수정(최종수정 2017년 5월 17일)]

고산 성당의 전신인 되재 성당 전경.

모바일용 요약 설명
고산 성당은 1891년 설립된 되재 성당을 모태로 하는 유서 깊은 교우촌 성당입니다. 되재 성당은 한수 이남의 첫 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으로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1942년 공소였던 수청이 본당이 되면서 오히려 수청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습니다. 1954년 임시로 공소건물을 지었으나 1958년 본당 소재지가 수청에서 다시 고산으로 옮겨가면서 되재 성당은 고산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습니다.

현 고산 성당은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1994년 한옥과 바실리카 형식을 절충한 건물로 장방형에 종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로 건립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만남’을 주제로 한 제대화를 통해 무명 순교자의 피와 땀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앙고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되재 성당 또한 2004년 7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면서 전주교구와 완주군의 복원 사업을 통해 2009년 10월 24일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되재 성당이 건립되던 해인 1894년을 본당 봉헌일로 지내는 고산 성당은 2014년 120주년을 기념해 교육관을 신축하였습니다.
미사시간
미사구분 요일 시간 기타사항
주일미사 10:30  교중미사
15:00  어린이미사
평일미사 06:00  
19:30  
10:00  
19:30  
10:00  
19:30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