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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부산교구 >  간월 김 아가타 묘
[소개] [찾아가는길]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죽림굴에서 최양업 신부를 공경하다 선종한 동정녀
지번주소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산 209 
전화번호 (052)262-5312
팩스번호 (052)262-5316
홈페이지 http://eonyang.pbcbs.co.kr
관련기관 언양 성당    
관련주소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간월골의 동정녀 김 아가타 묘소 가는 길. 일송정 산장 주차장 뒤로 계곡 옆 오솔길을 20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간월골에 살던 동정녀 김 아가타(1836-1860년)는 언양의 첫 신자 김교희 프란치스코(일명 재권, 1775-1834년)의 손녀로 경신박해 때 아버지 김상은 야고보(1804-?)와 오빠 김영제 베드로(1827-1876년)가 잡혀가자 뒤를 따르고자 다른 두 처녀와 함께 자진하여 체포되었다. 그러나 포졸들이 다른 데로 팔아넘기려 하자 도망쳐 나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피신해 있는 죽림굴에서 은신하며 지냈다.
 
여기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바깥소식을 전하고 식사 준비와 빨래 등으로 최 토마스 신부를 정성껏 공경하였다고 전한다. 최 토마스 신부는 짚신을 삼고 교우들은 이것을 팔아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 잡혀 갔던 후유증으로 여러 날을 앓다가 모든 성사를 신심 깊게 받은 아가타는 최 토마스 신부의 임종경을 들으며 24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으며, 둘러 있던 교우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최 토마스 신부는 시신에다 솔가지를 덮고 묘비인 패장을 세워 주었으며, 며칠 후 교우들이 간월골로 옮겨와 공소 뒷산에 매장하였다.
 
김 아가타가 매장된 간월골은 경상남도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가 있던 곳으로 김교희 집안을 중심으로 박해를 피해 모여든 신자들에 의해 일찍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 이전에 이미 샤스탕(Chastan) 신부의 방문이 있었고, 1845년 다블뤼(Daveluy) 주교가 방문했을 때는 예비신자가 150명이나 되는 큰 공동체였었다. 1850년에는 최양업 신부가 방문하기도 했다.
 
1991년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건립한 묘비. 동정녀 김 아가타는 선종 후 경상남도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가 있던 간월골의 이곳에 묻혔다.그러나 1860년 경신박해 때 포졸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17명의 신자들이 체포되고 남은 신자들도 가산을 모두 빼앗긴 채 쫓겨났다. 마침 순회 전교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 최양업 신부 또한 죽림굴로 피신하는 등 간월 공소는 거의 해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김 아가타의 아름다운 생애는 그 동안 구전으로만 이곳 신자들에게 전해오고 있었는데, 최양업 신부가 선종(1861년 6월 15일)하기 전인 1860년 9월 3일 죽림굴에서 리브와(Libois) 신부와 르그레즈와(Legregeois) 신부에게 보낸 열아홉 번째 마지막 서한에 그녀가 소개되어 있음이 후에 확인되었다.
 
“24세 된 동정녀가 있었는데, 교리에 밝고 열심하여 모든 신자들 중에서 출중하므로 일반의 존경과 흠모를 받아왔습니다. 항상 마음으로 위주치명(爲主致命)하기를 원하더니 자기 부친과 다른 신자들이 체포될 때 포졸들한테 가서 자기도 같은 신자이니 잡아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친과 다른 신자들의 만류로 다른 집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거기서 포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포졸한테 가서 잡혀가기를 청하였습니다.
 
이때 이 동정녀가 가르치며 선생처럼 지도한 두 처녀를 묶어가지고 가다가 여인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없으므로 저들을 관가로 데려가지 않고, 처녀들을 농락하고 나서 다른 데 팔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세 처녀들은 놓아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저들은 주님의 특별한 은혜로 놓여났습니다. 동정녀의 이름은 아가타였습니다.
 
아가타의 부친과 오빠가 감옥에 갇혔고, 집도 갈 곳도 없어 방황하다가 마침내 내게로 왔습니다.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여 탈진한 몸으로 병석에 누워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둘러있던 신자들과 같이 임종경의 마지막 말마디를 끝내자 아가타는 운명하였습니다.”(언양 성당 신앙전래 200년사, 1993년)
 
부산교구는 2008년 김 아가타의 묘를 살티에 있는 오빠 김영제 베드로 순교자의 묘 옆으로 이장하였다.1991년 4월 17일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김 아가타의 묘소를 정리하고 비석을 세웠다. 비문에 이해인 수녀가 쓴 시가 홀로 그녀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사랑의 순교를 열망했던  / 천심의 복된동녀 아가다여  / 지지않는 꽃으로 피어나소서  / 믿음의 길 밝히는 별이되소서.” 순례자들은 여인의 몸으로 천주를 고백하고 자진해 체포되려 했던 김 아가타의 용감하고도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교구는 2008년 3월 4일 간월에 있는 김 아가타의 묘를 살티에 있는 오빠 김영제 베드로의 묘 옆으로 이장하고 그해 9월 29일 축복식을 가졌다. 그리고 간월 공소 뒷산의 묘소 또한 보존하고 있다. [출처 : 부산교구 울산대리구 발행, 들풀, 바람 그리고 - 울산의 성지를 찾아서, 2010년, 내용 일부 추가 및 편집(최종수정 2014년 8월 27일)]

모바일용 요약 설명
간월골에 살던 동정녀 김 아가타는 언양의 첫 신자 김교희 프란치스코의 손녀로 1860년 경신박해 때 아버지 김상은 야고보와 오빠 김영제 베드로가 잡혀가자 뒤를 따르고자 다른 두 처녀와 함께 자진하여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포졸들이 다른 데로 팔아넘기려 하자 도망쳐 나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피신해 있는 죽림굴에서 은신하며 지냈습니다.

여기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바깥소식을 전하고 식사 준비와 빨래 등으로 최 토마스 신부를 정성껏 공경하였다고 합니다. 잡혀 갔던 후유증으로 여러 날을 앓다가 모든 성사를 신심 깊게 받은 김 아가타는 최양업 신부의 임종경을 들으며 24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으며, 둘러 있던 교우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최 토마스 신부는 시신에다 솔가지를 덮고 묘비인 패장을 세워 주었으며, 며칠 후 교우들이 간월골로 옮겨와 공소 뒷산에 매장하였습니다.

김 아가타의 아름다운 생애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다가 최양업 신부가 1860년 9월 죽림굴에서 리브와 신부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냈던 마지막 편지에 그녀가 소개되어 있음이 후에 확인되었습니다. 1991년 4월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김 아가타의 묘소를 정리하고 비석을 세웠고, 2008년 3월 김 아가타의 묘를 살티에 있는 오빠 김영제 베드로의 묘 옆으로 이장하고 그해 9월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간월 공소 뒷산의 묘소 또한 보존하고 있습니다.
미사시간
미사구분 요일 시간 기타사항
주일미사 06:30  미사 일정은 언양 성당 것입니다.
10:30  교중미사
19:30  
평일미사 06:30  
19:30  
10:00  
10:00  
19:30  
16:00  어린이미사
19:00  특전/청소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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