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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원주교구 >  강원감영(선화당)
[소개] [찾아가는길] [순교자] [앨범사진] [자료실] [게시판]

간략설명 고문의 서슬은 간곳없고
지번주소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54-2 
전화번호 (033)765-3350
팩스번호 (033)765-4996
홈페이지 http://www.wjwd.or.kr
관련기관 원동 성당    
관련주소 강원도 원주시 원일로 27
문화정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포정루와 선화당)
강원감영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출입문루인 포정루와 중삼문과 연결되어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으로 들어서는 내삼문.원주시 일산동에 위치한 강원감영지(江原監營址)는 원주시 제2청사로 사용되면서 그 모습을 잃기도 했지만 정청(政廳)인 선화당(宣化堂)과 정문인 포정루(布政樓)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현재는 원주시 제2청사가 철거되고 강원 감영지에 대한 발굴과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다.
 
이에 따라 원주 일대의 죄인들은 감원감영으로 끌려와 정청인 선화당에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다. 당시 이곳에서는 국사범 등의 중죄인은 물론 잡범들에 대한 형도 집행됐는데 박해가 일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처형되었다.
 
강원감영의 첫 번째 출입문루인 포정루.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전국적으로 박해가 회오리처럼 몰아치던 당시에 전국 각 지방의 감영은 천주교인들을 잡아들여 이들에게 배교를 강요하고 온갖 고문을 일삼았다. 그래서 어느 감영이든 대부분 그 때 흘린 순교자들의 피와 고통의 역사가 구전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해지곤 한다.
 
강원감영이 품고 있는 슬픈 역사 역시 동네 어른들의 입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때로는 아예 잊히기도 하지만 그 순수하고 굳건했던 신앙의 정신만은 퇴색하지 않고 남아 있다.
 
강원감영으로 들어서는 정문인 포정루를 지나면 선화당이 눈에 들어온다. 우아하게 뻗어 내린 기와의 곡선이 아름답기만 하지만, 수많은 교인들이 단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피를 흘린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네 군데 처마 끝에 기와로 구운 보호 장구를 갖추고 있는 것이 이색적인 선화당은 관찰사의 집무처로 쓰였으며, 포정루와 함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세워졌다. 포정루는 1660년(현종 1년)에 목사(牧使) 이후(李候)가 다시 건립하였고, 6.25 전쟁 때도 손상을 입었으나 다시 복구하였다. 선화당은 1667년에 다시 세워졌다.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1971년 포정루와 함께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포정루 및 선화당은 조선시대 감영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래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의 명칭은 강원감영(문루 및 선화당)이었으나 2004년 1월 17일 포정루 및 선화당으로 그 이름이 변경되었다.
 
포정루와 선화당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박해의 현장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원주교구 순교자로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복자품에 오른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많은 순교자들이 강원감영의 옥에서 혹독한 옥살이를 했다. 안타까운 것은 감옥 터에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복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4년 8월 22일)]

감원감영의 정문인 포정루를 바라본 모습으로 왼쪽부터 선화당, 내아, 행각(관리사), 포정루, 중삼문이 자리하고 있다.
강원감영의 포정루에서 안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왼쪽부터 내삼문, 행각(사료관), 선화당, 내아가 자리하고 있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원주 일대의 죄인들이 강원감영으로 끌려와 정청인 선화당에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는 국사범 등의 중죄인은 물론 잡범들에 대한 형도 집행됐는데 박해가 일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처형되었습니다.

강원감영지의 정문인 포정루와 정청인 선화당은 건립 당시 위치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조선시대 감영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래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 명칭은 강원감영(문루 및 선화당)이었으나 2004년 1월 17일 ‘포정루 및 선화당’으로 그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포정루와 선화당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박해의 현장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많은 순교자들이 강원감영의 옥에서 혹독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감옥 터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복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강원감영지에 있던 원주시 제2청사는 철거되고 지속적인 발굴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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